본 기자가 파이널판타지7을 처음 접한 것은 한 게임 잡지를 통해서였다. 거대한 칼을 든 왠 노란머리 삐죽한 캐릭터가 당당히 서있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그 책은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던 한 초등학생을 매료시켰고, 공략집을 읽고 또 읽으며, 게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다.
그 후 게임 좀 진행하려면 온갖 버그로, 튕기기 일쑤였던 창세기전3에 고통받던 때 친구를 통해 입수해 플레이한 파이널판타지7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지금이야 골판지에 눈코입 간신이 붙은 수준의 그래픽이지만, 2000년대 초 당시로써는 엄청난 충격을 준 그래픽이었고, 숨막히는 스토리와 쉴새없는 전투는 "이게 진짜 게임이구나"라는 감탄사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때문에 파이널판타지7의 리메이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기자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워낙 명작으로 손꼽히는 게임인 만큼 어지간한 퀄리티의 리메이크가 아니고서는 게이머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고, 요즘 트렌드에 맞추어 시스템을 수정했다간 원작을 즐겼던 이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등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4월 10일 정식 발매되어 게이머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이하 파판7: 리메이크)는 스퀘어에닉스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낸 모습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퀘어에닉스의 기술력을 모두 쏟아부은 듯한 캐릭터 모델링이다. 캐릭터 모델링의 경우 원작 이미지의 특성을 잘 짚어낸 역대 일본 게임 중에서도 손꼽일 정도로 수준급으로 구현되었고, 액세서리 하나, 무기 디자인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 스퀘어에닉스가 이 게임을 어떻게 신경썼는지 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원작이 세기말에 출시된지라 쉴새없이 클라우드의 앞에서 상반신을 숙이며 “안돼~”를 외치는 티파나, 혼자 대답하고 오버하는 바레트 등 캐릭터 대사나 행동이 다소 쌍팔년도스럽지만, 이 마저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를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여기에 원작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모델링에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 정도였던 '제시'가 티파, 에어리스라는 일본 RPG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히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톡톡튀는 매력을 뽐내 '제시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낸 캐릭터 재해석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여기에 아이템을 교체하면 인 게임 컷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이미 많은 게임에서 도입된 시스템이지만, 착용한 아이템에 따라 바닥을 뚫거나 폴리곤이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원래부터 있던 아이템인 것인 마냥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있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다만 캐릭터 모델링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파판7 원작 같은 벽돌이나, 골판지 같은 슬럼가 전경 등 주변 사물 퀄리티가 급격히 하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불편했지만 요망하게 역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꼬시는 에어리스나, 클라우드의 무심함을 꼬집는 티파의 압도적인 매력에 눈독 듯이 기억에서 지워졌다.
전투는 턴제가 아닌 리얼타임으로 진행된다. 이번 파판7: 리메이크의 전투는 시리즈의 전작이었던 파판15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쓸데없이 복잡하고, 멋에 치중한 느낌이 강했던 파판15보다 효율적이고, 화려한 액션에 더 집중한 모습이다.
기본 플레이 캐릭터는 주인공인 클라우드이지만, 숫자키로 간단히 캐릭터를 바꿔가며 플레이할 수 있었으며, 근접 공격이 강력한 클라우드와 티파, 원거리 공격과 마법 공격에 특화된 바레트와 에어리스 등 캐릭터 컨셉이 명확해 상황에 따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스킬 사용 역시 마나를 소비하는 마법과 공격 혹은 방어에 따라 증가하는 ATB를 소모하는 일반 스킬 등으로 나뉘어 있어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R키로, 스킬을 선택해 사용하는 간단하게 방식으로 구현해 놓아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액션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본 기자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바로 타격감이었다. 사실 파판 시리즈는 타격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별 의미없이 휙휙 날아다니다 틱 공격하는 겉멋 충만한 스킬이 상당수 존재했는데, 파판7: 리메이크는 화려하게 등장하는 소환수와 정말 맞으면 아파 보이는 클라우드의 리미트 필살기인 ‘흉자베기’ 등 강렬한 이펙트와 타격감을 제대로 구현해 놓은 모습이다.
장비는 크게 메인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액세서리로 나뉜다. 모든 아이템은 맵에 등장하는 상자와 서브 퀘스트 그리고 상점에서 구할 수 있으며, VR 전투나, 스쿼트, 턱걸이, 다트 등 미니 게임을 통해서도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게임 시스템의 핵심인 마테리얼은 전투를 통해 성장시킬 수 있으며, 무기 역시 SP 포인트를 소모해 공격, 방어, 밸런스 등의 전투 스타일 위주에 따라 자유롭게 육성할 수 있다.
이처럼 ‘파판7: 리메이크’의 콘텐츠는 흠잡을 곳이 별로 없을 정도로 원작의 연출과 새로운 시스템을 적당히 섞은 리메이크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게임이 점점 엔딩으로 향해 갈수록 느껴지는 감정은 ‘재미’보다는 ‘불안감’이었다.
바로 “스토리가 여기까지 밖에 진행이 안된다고?”라는 사실 때문. 사실 파판7은 당시에도 콘텐츠가 방대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CD 4장(인터네셔널판 기준)에 이야기를 꽉꽉 채워넣은 작품이었다.
스퀘어에닉스 역시 리메이크를 발표하면서 여러 속편으로 출시한다고 언급하며, 원작을 나눠서 출시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 정도로 스토리 진행이 느릴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파판7: 리메이크’의 분량은 냉정하게 원작의 CD 1장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 에어리스도 별의 영혼이 되어야 하고, 클라우드도 각성해야 하며, 제노스로 인해 별의 위기가 오는 등 진행되어야 할 사건이 수두룩한데, 떡밥만 무수히 던진 상태에서 끝나버린 셈이다.
여기에 워낙 엄청난 흥행을 거둔 파판7은 ‘비포 크라이시스’, ‘크라이시스 코어’, ‘더지 오브 케르베로스’ 등 수많은 외전이 존재하는데, 이 외전도 리메이크 본편에 등장시킬 듯한 암시를 곳곳에서 풍긴다.
스퀘어에닉스는 ‘파판15’에서 본편 못지않은 스토리를 담은 수많은 DLC를 선보인 전례가 있다. 때문에 ‘파판7 리메이크’ Part.1의 진행 수준으로 봤을 때 3편 이상의 본편과 각 캐릭터와 서브 시나리오를 담은 DLC를 선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올해로 54세를 넘긴 ‘파판7: 리메이크’의 총괄 디렉터 키타세 요시노리가 환갑이 되기 전 리메이크 시리즈를 다 출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파판7: 리메이크’는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으며 원작의 명성에 걸맞는 새로운 프렌차이즈 시리즈의 출발을 알렸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먼 모습이다. 과연 이제 첫발을 내딛은 ‘파판7: 리메이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작품으로 게이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 리메이크 스퀘어에닉스 파이널판타지7 파판7: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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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6 08:35: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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