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u, 22 Juni 2022

토발즈 "리눅스, 내년엔 '러스트' 언어도 품는다" - ZD넷 코리아

1991년 8월25일. 핀란드 헬싱키대학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 뉴스그룹에 메일을 보냈다. ‘미닉스’ 운영체제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담은 메일이었다.

그는 그 메일에서 “386AT 클론용 (공짜)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 무렵 개발자들이 흔히 주고 받던 메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메일은 컴퓨터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건이 됐다.

당시 메일을 보낸 사람은 ‘리눅스 창시자’인 리누스 토발즈였다. 그리고 그가 보낸 메일은 리눅스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91년 8월 25일이 ‘리눅스 탄생일’이 된 건 이런 사연 때문이다.

리누스 토발즈(왼쪽)가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린 오픈소스 서밋에서 더큰 혼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오픈소스 서밋 홈페이지)

■ "30년전 리눅스 공동체는 서부 세계 같았다" 

‘창시자’ 리누스 토발즈가 리눅스 개발자들 앞에 섰다. 토발즈는 2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린 ‘오픈소스 서밋’에서 리눅스 커뮤니티의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줬다.

외신들에 따르면 토발즈는 이날 오랜 친구인 더크 혼델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혼델은 한 때 인텔의 리눅스 및 오픈 소스 전략 담당 책임로 일했으며, 지금은 카르다노 재단에 몸담고 있다. 혼델은 여기서도 최고 오픈소스 책임자 역할을 맡고 있다.

이날 대담에서 토발즈는 따끈따끈한 소식도 전해줬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리눅스 커널에 러스트(Rust) 개발언어를 통합한다는 소식이었다. 토발즈는 “이르면 내년에 나올 리눅스 커널에는 러스트가 결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스트는 범용 프로그래밍 언어다. 모질라재단이 "안전하고, 병렬적이며, 실용적인”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지금은 별도 재단으로 독립했다.

(사진=오픈소스 서밋 홈페이지)

리누스 토발즈는 이날 리눅스 커널 프로젝트가 예전에 비해선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혼델과 인터뷰에서 “30년전 우리는 좀 더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토발즈는 리눅스 프로젝트가 처음 닻을 올리던 30년 전에는 서부 개척시대 서부에 비슷했다고 털어놨다. 누군가 패치를 보내면, 그냥 곧바로 커널에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운영할 수가 없다. 그 사이에 리눅스 공동체가 엄청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토발즈는 “이런 조심성이 리눅스 프로젝트의 초석이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신의 소프트웨어 개발 철학을 드러냈다. 뉴스택에 따르면 토발즈는 “개발자들에게 어떤 일을 해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작업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커널을 업그레이드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용자다”고 강조했다.

리눅스의 상징인 펭귄.

30년 사이에 리눅스의 위상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리눅스는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같은 첨단 기술을 지탱하는 주춧돌이 됐다. 리눅스 공동체도 엄청나게 커졌다.

토발즈도 이날 인터뷰에서 이런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오픈소스 공동체에서 리눅스는 아웃라이어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오픈소스는 기껏해야 대여섯 명 정도 개발자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데, 리눅스는 커널은 한번 공개될 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개발자들이 소통한다

이날 대화에서는 보안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다뤘다. 토발즈는 “(보안 문제가) 100%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꿈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현실 세계에선 늘 보안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용자들에게 버그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했다. 또 전체 소프트웨어 스택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보안 층위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또 취약한 하드웨어도 보안 문제를 야기하는 주범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 리누스 토발즈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 '재미'

리눅스는 올해 8월25일 31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그 사이 세상이 달라진 만큼이나 리눅스 공동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토발즈가 이날 토로한 대로 초창기 리눅스 공동체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리눅스를 만든 토발즈의 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토발즈는 리눅스 탄생을 알리는 첫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그냥 취미로. gnu처럼 거대하거나 전문적이진 않을 것이다.(just a hobby, won’t be big and professional like gnu).”

‘그냥 취미로’란 말은 토발즈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는 2001년 출간한 자서전에도 ‘Just for Fun’이란 제목을 붙였다. 우리 말로 옮기면 ‘그냥 재미로’ 정도된다. 부제 역시 ‘우연한 혁명 이야기(the story of accidental revolutionary)’였다.

‘리눅스’란 이름이 붙는 과정도 흥미롭다. 처음 토발즈가 붙인 이름은 ‘미눅스’였다. 1991년 뉴스그룹에 이메일을 보낼 때도 ‘미눅스’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돼 있었다.

토발즈가 지난 2001년 출간한 'Just for Fun'

하지만 개발 과정엔 리눅스란 가칭을 사용했다. ‘리누스의 미닉스(Linus’s MINIX)’란 의미였다. 미닉스는 그 무렵 유행하던 유닉스 계열 운영체제 이름이다.

그런데 토발즈는 프로젝트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걸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 ‘프릭스(Freax)’라 부르기도 했다. 유닉스(UNIX) 계열의 운영체제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앞부분에 붙은 ‘프리’는 괴짜스러운(freak) 혹은 자유로운(free)이란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프릭스란 이름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덕분에 개발 당시 가칭이던 리눅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 "딸 다니는 컴퓨터과학과에선 날 깃 창시자로만 알아"

‘재미’를 유난히 강조했던 리눅스 토발즈. 하지만 리눅스 공동체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재미만 추구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절친인 혼델은 이날 토발즈에게 “그냥 재미로 하는 일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토발즈는 하드웨어를 손수 땜질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스쿠버 다이빙도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틈틈이 자신의 다이빙을 기록하기 위한 오픈소스 프로젝트 작업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흥미로운 얘기도 털어놨다.

토발즈는 이날 “딸이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자기 학과에서 나는 깃(Git) 창시자로만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깃 작업을 한 건 6개월 밖에 안된다”고 항변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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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누스 토발즈가 ‘오픈소스 서밋’ 무대에서 절친과 인터뷰했다는 얘기를 조금 길게 썼다. 누군가 “팬심이 작용한 편향적인 글 아니냐”고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돌직구를 던져오면, “아니다”고 부인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대단한 일을 해 놓고서, ‘그냥 재미로 했어. 대단한 일 아냐’라고 눙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응원 보낼 만하지 않는가? 가뜩이나 즐거울 것 없는 요즘 같은 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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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2 07:30:5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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