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 초가 되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누가 그리고 어느 분야가 선정될지 설레는 마음이 된다.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펜로즈, 겐젤, 게즈에게 수여됐다. 모두 블랙홀에 대한 이해를 확고하게 하는 데 이바지한 연구자들인데, 펜로즈 선정의 동기가 “블랙홀 형성은 일반상대론의 확고한 귀결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특이점 정리'라고 하는 펜로즈의 업적을 언급한 것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블랙홀이 과학적 실체로 인정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천체로 알려져 있다.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니 우주에서 이것을 보면 마치 검은 구멍처럼 보일 것이다. 이러한 블랙홀의 개념은 사실 18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뉴튼 중력에서 별 표면에서의 탈출속도는 이 별의 밀도에 비례한다. 1783년 존 미첼과 1796년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별의 밀도가 적당히 높아지면 이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빛이 지구와 같이 아주 멀리 있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블랙홀과 같은 천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30여 년이 흐른 1916년 초 독일의 천체물리학자 슈바르츠쉴트는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아인슈타인의 중력에 대한 매우 혁신적인 논문을 읽고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의 구대칭 진공해를 발견한다. 슈바르츠쉴트 메트릭이라고 부르는 시공간인데 이 해는 두 가지 면에서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다. 첫째, 공간의 휘어짐이 중심으로 갈수록 점점 강해져 어느 구면(사건지평면 혹은 슈바르츠쉴트 반경) 안으로 들어가면 빛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소위 블랙홀 영역이 존재한다. 둘째, 이 블랙홀 영역의 중심에는 시공간 휘어짐이 무한대로 커지는 소위 특이점이 존재한다.
1920~1930년대에는 이와 같은 블랙홀 해의 의미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논란의 핵심은 블랙홀과 같은 천체가 실제 자연에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939년 미국의 오펜하이머와 그의 제자 스나이더가 ‘계속적인 중력 수축에 관하여’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보통의 별은 내부에서 핵융합과 같은 과정을 통해 열이 발생하고 이 압력으로 중력과 균형을 이루어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이들은 압력이 없이 중력 수축만 일어나는 경우를 일반상대론에서 고려해 본다.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의 풀이가 보여 주는 것은 별이 중력 수축을 진행하면서 사건지평면이 발생하고 중심에서의 질량 밀도가 무한대가 되어 특이점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상대론의 블랙홀 해는 수학적인 것이 아니라 중력붕괴를 통해 자연에 실재하는 천체물리적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20여 년 후에야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2차 대전이 발발해 오펜하이머가 맨하튼 원자폭탄 계획에 참여하게 돼 연구를 접어서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버린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에서 도출되는 이상하고 극단적인 해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의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좀 더 깊은 역사적 성찰을 한다: “블랙홀의 존재는 별의 진화가 돌아오지 못하는 구멍과 같은 최종상태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는 물질과 시공간의 영속성과 안정성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휠러의 비판도 있었다. 아인슈타인 사망 3년 후인 1958년 휠러는 브뤼셀에서 개최된 우주론 학회에서 오펜하이머의 결과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오펜하이머의 결론은 구대칭의 이상적인 물질분포를 가진 별이 수축하는 경우에 도출된 것인데 실제 자연에서는 회전이나 충돌, 폭발 등이 발생하므로 구대칭 상황은 지극히 이상적인 상황이며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중력붕괴는 구대칭이라는 비물리적이고 수학적 가정의 결과이지 실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1963년 펜로즈는 휠러에게서 위와 같은 문제를 듣고 강한 흥미를 느낀다. 수학적 배경이 강한 그는 위상수학의 새로운 방법을 사용해 이 문제에 도전하고 1964년 12월 드디어 “중력 수축과 시공간 특이점”이라는 제목의 연구결과를 이듬해 1월 피직컬리뷰레터에 발표한다.
펜로즈는 별의 수축과정에서 소위 갇힌면(Trapped surface)이 존재하고 수축 물질이 널(0)에너지 조건을 만족하면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서는 특이점이 반드시 생성된다는 사실을 보인다. 갇힌면의 출현은 중력 수축에서 쉽게 보일 수 있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은 이상한 물질이 아닌 한 모두 위의 에너지 조건을 만족한다. 이 증명은 구대칭을 전혀 가정하지 않고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일일이 풀 필요가 없는 매우 일반적인 접근법이어서 휠러의 추측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특이점, 즉 블랙홀은 자연에서 중력 수축의 과정을 통해 충분히 형성될 수 있는 천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슈바르츠쉴트 메트릭 발견 이래 약 50년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우주의 시초가 있느냐의 문제는 우주론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1965년 1월 학생이었던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빅뱅 우주론의 관점에서 초기 특이점의 존재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명백히 증명하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963년 러시아의 립시츠와 칼라트니코프가 균질성과 등방성을 가정하지 않으면 우주는 특이점이 아닌 유한한 고밀도의 상태에서 팽창할 수 있다는 논문도 있었다. 그는 펜로즈의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연구실 동료인 카터로부터 특이점 정리에 관한 내용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는다. 영화필름을 거꾸로 돌리듯이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팽창이 중력 수축과 유사한 문제가 되어 펜로즈의 논증을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호킹은 “열린 우주에서의 특이점 출현”이라는 제목으로 그 해 8월 논문을 투고하고 10월 출판된다. 이후 그는 펜로즈와 함께 새로운 위상수학적 방법과 특이점 정리를 발전시켜 일반상대론 연구의 황금기를 열게 된다. 블랙홀은 천체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에게 더는 수학적 특수해가 아닌 실체로서 받아들여지게 됐고 천체 현상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또 2019년 초에는 사상지평선망원경(EHT)을 통해 직접적인 영상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특이점에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를 언급한다. 물리학에서 무한대의 양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 현상을 지배하는 이론이 더는 타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이점 형성에 가까워지면 일반상대론은 더는 타당한 이론이 아니며 다른 중력이론으로 대체되거나 양자현상을 포함한 중력이론으로 기술돼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에서는 무한대의 양이 출현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 새로운 기술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펜로즈는 블랙홀 연구의 흐름을 바꾼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고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보답받게 됐다. 최근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돌이켜 보면 2017년 중력파, 2019년 물리적 우주론과 외계행성, 그리고 올해의 블랙홀 등 모두 천체물리 분야에서 선정되었다. 이는 그동안의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이기도 하지만 최근 천체물리 분야에서의 과학적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 면도 있다. 중력파, 다중신호 천문학 등 향후의 발전이 더 크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연구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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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7 08:23:2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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