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디어 콘텐츠가 그렇듯이, 게임도 사전 정보를 최대한 찾아본 뒤 즐기거나, 최소한의 정보로 게임을 즐기는가에 따라 감상이 바뀐다. 후자의 경우 보통 두 가지 결말을 맞이한다. 시작하자마자 취향에 맞지 않거나, 즐겨보니 생각보다 괜찮아서 정신없이 몰입하거나.
‘메르헨 포레스트’는 2017년 출시된 '메르헨 포레스트 <메룬과 숲의 선물>'을 완전히 리뉴얼한 타이틀이다. 다만 핵심 콘텐츠는 변함없기에 사실상 게임 내용 대부분은 이미 공개된 셈. 퍼블리셔인 클라우디드 레오파드도 굳이 게임 전체 구성을 숨기지 않고 오픈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위처럼 극단적인 양쪽 성향에 모두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사전 정보를 알아도 충분히 재미있고, 모르면 재미에 더해 놀랄만한 요소가 있다.
신비한 숲에서 시작하는 메룬의 동화 같은 모험
‘메르헨 포레스트’는 '신비한 숲'에서 사는 소녀 '메룬'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를 따라 약사가 되기 위해 숲에서 여러 재료를 모아 다양한 약을 만들고, 주민들 부탁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약사의 재능을 꽃피운 메룬은 결국 할아버지가 오랜 기간 연구해 온 비약인 '바람꽃'을 만들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약 2시간 정도 플레이를 진행하였을 때 이야기며, 꽃이나 토끼가 사람처럼 말을 한다거나, 숲이 분명한데 펭귄이 사는 등, 게임 이름처럼 동화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꽃을 만든 이후 게임은 급변하는데, 지하 미궁이 발견되고 메룬의 과거가 일부 밝혀지며, 그 내용으로 인해 메룬은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하 미궁으로 향한다.
이후 게임은 던전 탐색형 RPG로 변한다. 원래 이런 게임이었다는 듯이 튜토리얼도 새로 등장한다. 게임에서는 이 시점을 2부라 부르며, 기존 신비한 숲에서 할 수 있던 낚시를 비롯해 던전 탐색과 전투, 유물 수집, 요리, 약재 연성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약 8시간에 걸쳐 2부를 끝내면, 게임은 다시 3부로 넘어간다.
사전에 장르조차 모르고 시작한 사람이라면 2부에서 던전 탐색형 RPG가 됐을 때 많이 놀랄 것이다. 2부가 끝나니 3부를 또 경험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공식 홈페이지 첫 소개부터 ‘이 작품은 총 3부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시스템과 분위기가 장마다 변화합니다.’라는 문구가 있기에, 사전에 정보를 알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흐름을 유추했겠지만, 사전에 정보가 없었다면 생각보다 놀랄 만한 포인트다.
3부는 신비한 숲으로 갈 수 없어 낚시 콘텐츠가 막히고, 유물이 나오지 않고 담당 캐릭터의 역할이 바뀌어 유물 수집도 불가능해진다. 새로운 요소로 어빌리티와 전투 기술이 추가되며, 이를 잘 활용해 더욱 어려워진 탐색과 전투를 돌파해야 한다. 1부에서부터 볼 수 있던 메룬 상태창의 여러 요소가 완전히 기능하는 것도 이 시점부터고, 플레이 타임도 가장 길다.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3부로 구성된 경험이 마음에 들었다. 1부부터 3부까지 스토리는 물론 설정도 제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부와 3부에 비해 1부는 약간 붕 뜨는 느낌도 있었지만, 게임을 모두 마치니 1부 역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라는 것을 알았다.
이 같은 변화는 게임의 구성을 모르고 시작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이지만, 그렇다고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이 게임의 핵심 재미는 던전 탐색이기 때문이다.
여기부터는 잔혹동화! 쫄리는 맛이 인상적인 던전 탐색
메르헨 포레스트는 '던전 탐색형 RPG'를 표방한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본격적인 게임 시작은 2부부터다. 기존에 익혔던 지식은 이동이나 선택 조작 외에는 전부 쓸모없어진다. 같은 NPC나 물건에 여러 번 상호작용을 하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나 '네거티브 마테리얼' 같은 요소가 대표적이다.
2부는 크게 탐색 파트와 전투 파트로 나뉜다. 던전에 진입하면 메룬의 정수리를 비추는 탑다운 시점으로 바뀌며, 메인 화면에 체력과 함께 식량이 표시된다. 식량은 던전 체류 시간에 따라 일정량 소모되며, 식량이 모두 떨어지면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식량은 필드에 놓여 있는 걸 주워 먹거나 아이템을 사용해 회복할 수 있다.
던전을 돌아다니다 보면 무작위로 적과 마주쳐 전투에 돌입한다. 전투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데, 적의 행동을 잘 보고 공격, 방어, 회피 등의 동작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적은 행동하기 전에 'ACTION'이라는 아이콘을 띄워 곧 행동할 것임을 알려주고, 이후 적 근처나 화면 중앙에 앞으로 할 행동이 어떤 행동인지를 보여준다.
일반 공격은 별다른 메시지 없이 두 번 반짝인 뒤 공격이 들어오고, 방어나 회피로 대처할 수 있다. 화면 중앙에 하얀색 글씨로 표시되는 공격도 동일하다. 화면 중앙에 붉은색 글씨로 표시되는 공격은 방어 불가 공격으로, 공격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회피해야 한다. 화면 중앙에 초록색 글씨로 표시되는 공격은 회피 불가 공격이며, 타이밍에 맞춰 방어하면 된다.
이중 특히나 신경 써야 할 것은 일반 공격과 하얀색 공격이다. 두 번째 반짝이는 타이밍에 맞춰 방어하면 '패링'이 발동하는데, 이때 적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오의, 도구 사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의를 사용하기 전까지 도구나 어빌리티는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강적을 상대할 때는 첫 패링 시점에 다양한 강화를 해두는 게 좋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고, 선제공격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투에서 도망칠 수 없다. 그러니 등장하는 적들의 패턴과 그 대처법을 외워서 매 전투를 최소한의 피해로 돌파하는 게 중요하다.
3부는 2부에서의 탐색, 전투를 좀 더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사실 2부도 어떤 의미에서는 튜토리얼이다. 진짜 던전 탐색은 3부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3부의 탐색 파트는 식량 소모 속도가 빨라지고 소모량도 늘어나며, 식량이 전부 소모됐을 때의 체력 페널티도 커진다. 탐험과 전투에 도움이 되는 '어빌리티', 전투에서 TP를 쌓아 사용하는 '전투기술'이 추가되지만 둘 다 식량을 소모한다. 식량 관리가 거의 필요 없던 2부와 달리, 3부는 식량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하기 어렵다.
탐색해야 할 던전은 더욱 방대해지고, 도중에 통로를 막는 잠긴 문도 대폭 늘어난다. 열쇠나 어빌리티로 열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어빌리티는 식량을 소모하니 가급적 열쇠로 여는 게 좋다. 보물상자도 늘어났는데, 대부분은 잠겨있거나 함정이 설치된 경우가 많다. 보물상자의 상태를 감별하고, 잠긴 상자를 열거나 함정을 해제하는 데에는 무조건 식량이 소모되니 현재 상황에 따라 보물상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전투에서는 '전투 기술'과 '어빌리티'가 추가됐다. '전투 기술'은 무기에 붙은 스킬로, 일반 공격을 히트시키며 쌓은 TP를 소모해 사용한다. 공격이나 방어를 올리거나 체력을 조금씩 회복하는 등 유용한 게 많지만, 빈틈이 많은 행동이기에 타이밍을 잘 봐서 사용해야 한다. '어빌리티'는 패링에 성공한 뒤 사용할 수 있으며, 공격력이나 방어력 버프, 체력 회복이나 특정 오의 강화 등의 기능을 한다.
이외에도 보스급 적뿐만 아니라 일반 레벨 중에도 즉사나 그에 준하는 강력한 공격을 하는 점까지 주의해야 한다. 처음 새로운 구역에 진입하면 어떤 적들이 등장하는지, 적들은 어떤 공격을 사용하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익혀놔야 탐색이 수월하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탐색 파트는 체력, 식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기본적인 것만 신경 쓰면 되고, 전투는 던전 구역마다 몬스터가 2종류만 등장해 외워야 할 패턴은 그렇게 많지 않다. 새로운 구역에 처음 들어가면 탐색지에 새로운 기믹이 생기거나, 적들이 이전 구역보다 대폭 강해지지만, 처음에만 조금 버겁지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바로 쓴맛을 본다. 탐색에서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회복이나 세이브를 게을리했다가 다음번 만난 전투나 함정에 게임오버 당하는 일도 있고, 전투에서도 '이 녀석은 이제 껌이지'라고 생각한 몬스터가 공격 패턴을 이리저리 섞어 들어오거나 패링 타이밍을 주지 않는 것에 당황해 큰 대미지를 입는 일도 있었다.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다음 체크 포인트가 나올 때까지, 혹은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문이 나올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나는 한번 이 게임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8시간~10시간씩 연속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으며, 전체 플레이 시간인 28시간 동안 끝까지 몰입하며 즐겼다.
지도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일깨우는 게임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즐긴 게임이나, 지도가 없다는 점에 불편한 상황도 있었다.
2부까지만 해도 던전이 그렇게 길지 않고, 구조도 복잡하지 않아서 충분히 외워서 진행할 수 있었다. 던전에 들어갈 때마다 구조는 그대로지만 온라인 게임의 인스턴스 던전마냥 보물상자나 문, 식량 등이 원상 복구되는 식이라 이를 이정표 삼아 진행하면 됐다. 지도가 없는 건 아쉬웠지만, 이 정도라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부의 던전은 2부에 비해 규모도 상당히 크고, 구조도 복잡하다. 식량, 체력 관리도 더 철저히 해야 하니 초조해져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지나칠 때도 있었다. 한 번 열었던 문이나 보물상자가 복구되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정표로 삼을 만한 것도 없다.
다가가기 전까지 보이지 않는 바닥이 나오는 6층에서는 같은 층을 2시간 넘게 헤매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바닥은 한 번 밟으면 계속 나타나 있지만,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여행용 텐트에 들어갔다 나오면 사라져 버려서 한 번의 시도로 출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필 6층에서 나오는 적들은 종종 즉사 공격이나 최대 HP의 50%만큼 대미지를 주는 공격을 하기도 해서 더욱 골치 아팠다.
각 층의 구조는 언제 들어가든 항상 그대로이기 때문에, 계속 드나들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길을 찾게 되어 있다. 3부에서 진행하는 토벌 퀘스트를 보면 상급으로 갈수록 토벌해야 하는 몬스터 수가 많아지는데, 이러한 구성으로 인해 던전 탐색형 RPG임에도 지도가 없는 것은 던전을 헤매면서 즐기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굳이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던전 탐색의 재미가 상당하다. 다른 게임이라 생각될 정도로 완전히 이야기와 구성이 바뀌는 부분도 매력적. 메인 시나리오 이외 다양한 서브 퀘스트도 있어 파고들수록 오래 즐길 수 있다. 굉장히 헤매게 되는 구성임에도 지도가 없다는 건 불편하지만, 오랜 시간 몰입감을 유지하는 던전 탐색형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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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5 12:45:11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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