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맥과 존 로메로, 이드소프트, 나치, 그리고 FPS의 대표적인 장수 프렌차이즈.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단어이자 올드 게이머라면 잊을 수 없는 게임. 바로 '울펜슈타인'이다. 나치와 연관된 게임하면 빠짐없이 등장하고, FPS의 역사를 언급할 때마다 꼭 언급되는 '울펜슈타인' 시리즈가 신작을 선보였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에 새로운 피를 수혈한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다. 이번에는 히틀러를 죽인 남자 블라즈코윅즈의 두 딸이 나치에 맞선다.
'머신게임즈'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나치가 승리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작인 '더 뉴 콜로서스'가 나치에 항복한 미국이 배경이었다면, 이번에는 프랑스의 파리다. 히틀러를 죽인 남자 블라즈코윅즈가 실종되고, 그의 두 딸인 '제스'와 '소프'가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이 두 젊은 피는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들을 돕고 나치를 물리쳐야 한다.
최근 FPS 게임들의 트랜드를 살펴보면 '배틀로얄' 방식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배틀로얄 시스템은 많은 성공사례를 보여주며, 대세 장르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과연 FPS의 선조 격인 '울펜슈타인'이 이런 유행 속에서 게이머들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리고 어떤 변화와 재미를 가져왔을지 한 번 살펴볼까 한다.
영블러드의 또 다른 이름 '듀오'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의 가장 큰 특징은 블라즈코윅즈의 두 딸인 소프와 제시를 동시에 플레이한다는 점이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면 다른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AI가 플레이한다. 장르가 FPS인 만큼 어드벤쳐 게임 수준의 협동 플레이를 요구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크게 도움을 준다거나 눈에 띄는 협력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배틀로얄의 시스템을 의식한 도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파트너 시스템의 가장 큰 역할은 한쪽이 행동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 부활을 해준다거나, 서로의 체력과 방어력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최근 FPS 게임을 해본 게이머라면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에서는 '공유한 생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총 세 번 부활할 수 있다. 공유한 생명을 사용하기 전에 파트너가 구해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양쪽 모두 행동불능일 경우 하나를 소모해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시스템을 도입한 의도는 알겠으나,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에서는 재미를 떨어트리는 요소가 됐다. 행동불능 상태에서 회복하게 되면 체력을 어느 정도 복구한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반복해 무한으로 살아나는 것이 가능하다. 적한테 맞아도 쉽게 살아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점은 게임의 호흡을 느려지게 하고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이를 해소할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멀티플레이다. 친구끼리 협동 플레이를 한다면 적에게 들키지 않고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고, 애초에 서로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서로 화끈한 전투를 원하거나 얼마나 '샷발'이 좋은지 겨뤄보고자 하는 '듀오'들은 멀티플레이에서 이 시스템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공개된 게임에서 무작위 플레이어와 게임을 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게임에서 몇 번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데, 게임의 진행보다는 서로 '나는 내 갈 길 간다'로 흘러갔다. 스토리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문 열기' 부분에서 잠수타는 플레이어, 입장하자마자 파밍에만 집착하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스토리를 감상하고 싶거나 매끄러운 진행을 원한다면 차라리 AI를 믿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전통, 유행의 옷을 입다. 레벨업과 강화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레벨업과 스킬 해금, 능력 강화 같은 RPG 요소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 역시 최근 FPS 장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레벨업은 꾸준히 나치들을 죽이면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고, 캐릭터 스킬은 지역 곳곳에서 얻는 은화를 통해 개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체력과 방어력의 최대치를 올리거나, 각종 전투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동료에게 주는 효과를 변경할 수 있다.
무기의 업그레이드도 비슷하다. 각각의 무기에는 스코프, 탄창, 소염기 등 각종 파츠를 장착할 수 있다. 이 파츠는 브랜드마다 성능이 다르며, 브랜드별 보너스 수치가 적용된다. 파츠를 어떻게 부착하느냐에 따라서 데미지와 연사속도 증가, 장탄 수 확대 그리고 총기의 용도까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스코프와 소음기를 장착할 경우 저격 소총처럼 사용할 수 있게 바뀌고, 샷건에 손전등을 추가하면 어두운 지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레벨업과 무기 강화 요소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적들도 강해진다는 뜻이다. '무작정 쏠 것이 아니라 상대하는 적마다 패턴이나 약점이 있으니 이를 공략해보라'는 개발자의 의도는 알겠으나, 이는 오히려 역효과라고 생각한다.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플레이어보다 조금씩 강한 나치들을 통해 레벨업과 강화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일종의 허들을 만드는 개념인데, 사실 이런 레벨 디자인은 후반부에 갈수록 게임이 밋밋해진다. 레벨업과 강화가 끝나는 순간이 오면 적들은 한방이지만 플레이어는 불사신이 되기 때문이다.
적의 레벨과 체력, 방어력이 표시되는 점, 특정 무기의 효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강화요소는 FPS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엔 FPS가 요구하는 '샷발'보다는 '장비발, 스킬발'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게임에 강화요소가 도입되면 '노가다'라는 부작용을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다. FPS의 기본인 '서로 공평한 한방'을 추구하는 유저라면 레벨업과 강화요소를 받아들인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에 실망할 것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하면 금방 체감할 수 있다. 게임이 계속될수록 체력만 늘어난 나치를 쓰러트리기 위해 탄약을 퍼부어야 한다. 플레이어는 레벨업과 강화를 위해 의미 없는 노가다 플레이를 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스킬을 개방하고, 무기마다 파츠를 부착하고 모두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래야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두 딸, 시간 많은 '레지스탕스'
전반적인 맵이나 배경, 캐릭터 디자인은 '평타 이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고, 나치의 문화나 그 기술력을 단 한 번도 접해본 적 없지만, 게임을 하는 내내 '그럴싸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1980년대 나치가 지배하는 프랑스의 모습이나 나치의 기술력을 두른 적들과 기계들, 레지스탕스의 비밀기지, 그리고 각종 건물과 소소한 소품들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점은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옆길로 빠지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한 번에 보여주기에는 아까웠던 모양이다.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차근차근 챕터를 클리어하는 선형적 방식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 맵에서 각 구역을 해금하는 방식이다. 언제든 다시 플레이 할 수 있다. 완전한 오픈 월드는 아니지만, 숨겨진 숏컷을 찾고 아이템을 수집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도를 열어놨다. 그리고 중간중간 퀘스트를 부여하거나 일간, 주간 임무가 갱신되기 때문에 그 지역을 한 번 다 깼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에서는 전작들과 비슷한 퍼즐 요소도 발견할 수 있다. 곳곳에 숨겨진 플로피 디스크를 해독하고, 잠겨있는 상자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다. 이런 수집요소, 감춰진 아이템에 집착하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나중에는 퀘스트보다 '어디 뭔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적은 무시하고 골목길이나 건물을 뒤지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이 게임이 '울펜슈타인'이라는 점이다.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이나 수집요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굳이 이게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다른 지역을 클리어하고, 다시 돌아와서 찾지 못한 아이템을 찾는 방식이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숙제를 안겨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숨겨진 아이템을 발견하지 못하고, 수집요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에이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상관없겠지만, 업적이나 트로피를 노리는 플레이어라면 상당히 피곤한 요소다.
세대교체의 시기에 선 '울펜슈타인'
'울펜슈타인'은 지금까지 그 시리즈를 이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레전드 대우를 받을 만한 게임이다. '만약 나치가 승리했다면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 한 번쯤은 해본 끔찍한 상상을 이만큼 오랫동안 그리고 자세하게 풀어낸 게임은 '울펜슈타인'이 독보적이다. 악랄한 나치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나쁜 짓을 일삼는 나치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도 함께 제시한다.
'머신게임즈'가 이번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에서 블라즈코윅즈의 두 딸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것은 좋게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옛날 방식을 고집하며 머물러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게이머가 '전통'이라는 것에서 기대하는 재미와 가치가 조금은 옅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1980년대에 미래적인 갑옷과 무기를 사용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지금의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책상에 축음기와 지구본이 놓여있고, 앤틱 가구들이 가득한 아버지의 서재에서 두 딸이 케이팝 댄스를 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도는 좋았지만 어색하다는 뜻이고, '이런 시스템이 과연 이 게임에 어울리나?' 하는 의문이 든다.
'머신게임즈'는 변화의 기점을 제스와 소프라는 '영블러드'를 통해 시작하려 한 것 같다. 자신 있게 그려낼 수 있는 비극적인 시대와 이에 맞서는 레지스탕스들의 모습은 이번에도 제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게임적인 요소를 시도한 것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충분히 칭찬할만한 일이다.
변화는 어렵다. 변화를 통해 성공을 이루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 그리고 이를 시도하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게임이 오로지 전통만 고집하다 사라지는 모습을 봐왔다.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에 실망하고, 적응하기 어색한 게이머들도 많겠지만, '울펜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더 오랫동안 보고 싶다면 꼭 거쳐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머신게임즈'의 입장에서도 위험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대담한 변화와 도전을 높게 사고 싶다. 이번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를 통해 얻은 결과물이 앞으로 변화된 '울펜슈타인' 시리즈의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http://www.gamein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8
2019-08-01 10:00:0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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